
완벽함을 강요하는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스스로의 결핍과 상처를 감추기에 급급하다. 그러나 깨지고 부서진 ‘파편’이야말로 인간다움의 본질이며, 새로운 탄생의 시작으로도 읽힌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전당장 김상욱) 복합전시6관에서 오는 4월 5일까지 열리는 ‘파편의 파편: 박치호·정광희’전은 남도를 대표하는 두 중견 작가의 시선을 통해 불완전함 속에 깃든 아름다움을 조명한다.

전시장 초입에서 관객을 압도하는 것은 박치호 작가의 거대한 드로잉들이다. 작가는 ‘빅맨’ 시리즈를 통해 인간의 신체를 온전한 형태가 아닌 팔이나 다리, 얼굴의 일부가 잘려 나간 ‘파편’의 모습으로 제시한다. 이는 우리가 살아가며 몸과 마음에 새겨온 ‘상흔’에 대한 기록이다.
특히 전시장 벽면을 가득 채운 대형 드로잉 시리즈는 수묵의 번짐 기법을 극대화해 인간의 압도적인 존재감을 드러낸다. 뚜렷한 윤곽선 대신 겹겹이 쌓인 먹의 층위는 세월의 무게와 고통을 묵묵히 견뎌낸 인간의 숭고함을 증명한다. 작가는 ‘상처’를 감춰야 할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삶을 지탱해온 흔적이자 타인과 깊이 연결될 수 있는 통로로 규정한다. 관람객은 이 거대한 파편들 앞에서 자신의 상처를 대면하고 이를 수용하는 치유의 과정을 경험하게 된다.
어두운 전시장으로 들어서면 ‘망각’을 주제로 한 작품들이 이어진다. 작가는 기억을 잃어가는 치매의 아픔을 형상화하며 망각을 통해 오히려 기억의 본질을 말한다.
박치호 작가가 신체의 파편을 통해 인간의 상흔을 드러낸다면 정광희 작가는 ‘달항아리’와 ‘먹’이라는 전통적 매체를 현대적인 조형 언어로 재해석하며 사유의 공간을 구축한다. 그의 작업은 전통 수묵의 정신을 계승하면서도 이를 입체적 설치 예술로 확장한다.

정광희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파편’이라는 주제를 보다 철학적인 설치 작업으로 풀어낸다. 특히 작가가 주목한 것은 깨진 달항아리의 조각들이다. 한지 위에 먹물이 담긴 달 항아리를 던져 깨는 작업 ‘나는 어디로 번질까?’에서는 세상을 향한 나의 역할은 무엇이고 나의 사회적 존재의 의미는 무엇인지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파즉전’에서는 모두 다른 파편의 모습에 조명해 소외된 존재들의 형식을 드러낸다. 파편으로 얼굴을 가린 사진 작업은 나와 파편이 둘이 아님을 말하며, 주변인으로 확장된 이미지들은 우리 모두가 하나밖에 없는 파편임을 시각화한다.
이번 전시는 관람객이 전시의 내용을 각자의 삶과 연결 지을 수 있도록 오감을 자극하는 공감각적 경험을 제공한다. 전시 입구에 놓인 ‘질문 카드’는 관람의 이정표가 돼 작품 속 파편의 의미를 자신의 삶에 투영해보는 성찰의 시간을 이끈다. 여기에 조향된 전용 향기와 정서적 안정감을 주는 ‘촉각 인형’, 사유에 집중하도록 돕는 ‘명상 공간’이 더해져 오감을 아우르는 깊은 몰입과 연대의 장을 완성한다.
김상욱 ACC 전당장은 “이번 전시는 지난해 처음 선보인 ‘ACC 지역협력협의회’가 추천한 남도의 중견 작가들을 모신 자리“라며 ”효율과 속도가 강조되는 디지털 시대에 두 작가가 펼쳐놓은 파편들은 우리에게 ‘잠시 멈춤’의 시간을 선물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소원기자 ssoni@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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