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의 산수, 미디어아트로 피어나다

by 임창균 기자 입력 2025.04.03 16:48
4일~7월6일 ‘이이남의 산수극장’
지역예술 상생…ACC 10주년 상징
전통 산수화와 미디어아트 결합
다양한 오브제 활용해 몰입감↑
전세대 공감 부르는 시간 '기대'
'이이남의 산수극장'에 전시된 '어머니 그리고 산'

어둑한 전시장을 지나자 수미터 높이로 펼쳐진 산수화가 시시각각 변하고 곳곳에 새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호남의 대표적인 미디어아티스트 이이남 작가가 표현한 호남의 풍경에는 우리가 잊고 있던 고향이 담겼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하 ACC)는 4일부터 7월6일까지 문화창조원 복합전시5관에서 'ACC 지역작가 초대전-이이남의 산수극장'을 진행한다.

ACC와 이이남 작가의 인연은 10년 전 개관 페스티벌 공연인 '세컨드 에디션(2015년)'이 시작이 됐다. 이 작가를 조명하는 공연으로 이후 ACC와 그는 여러 강연 프로그램과 야외 전시 등을 통해 인연을 이어왔다.

ACC는 개관 10주년을 맞아 지역과 함께 해 온 시간을 되짚고자 지역 중견 작가인 이 작가를 조명하기로 했다.

이번 전시는 이이남 작가에게도 큰 도전이다. 그동안 모니터라는 기기를 활용했으나 이번 전시에서는 다양한 오브제와 미디어를 통해 관람객들이 더욱 작품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구현했다.

전시는 '나의 살던 산수', '어머니 그리고 산', '고향 산수도', '아버지의 폭포', '산수극장', '고향의 빛' 등 6개 주제와 공간으로 구성됐으며 24점의 신작을 선보인다.

작품들은 작가의 고향인 담양군 봉산면의 자연에서 영감을 얻었다. 유년기에 보고 자란 병풍산, 영산강의 풍경을 떠올리며 전통적인 산수도를 미디어아트로 구현해 관람객이 저마다 마음 속에 갖고 있는 고향을 떠올리도록 했다.

'나의 살던 산수'가 전시된 공간에 들어서면 이원수 시인의 시 '고향의 봄'이 노래로 흘러나오고 3개면에 비춰지는 산수화는 '찰칵'거리는 효과음에 따라 바뀐다. 전시 공간 가운데에는 거대한 거울 위에 두루마리가 펼쳐져 있고, 거울에 비춰진 조명은 천장에서 물결처럼 일렁인다. 나의 살던 산수는 작가가 어린 시절 달력 속 산수화를 넘겨보며 예술가의 꿈을 키운 것을 표현한다.

'이이남의 산수극장'에 전시된 '어머니 그리고 산'. 두루마리속 풍경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비가 내리고 어두워지길 반복한다.

'어머니 그리고 산'은 우뚝 서 있는 거대한 두루마리 속 산수화와 아래 설치된 바위, 나룻배 등 오브제의 조합이다. 두루마리 속 풍경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비를 맞고 젖어가고, 날이 어두워지면 달이 떠오르며 주변에서 부엉이 우는 소리가 들린다. 작가는 생전 어머니가 유람하지 못한 아름다운 자연을 그리며 사후에라도 그곳에 머물기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선조들이 직접 갈 수 없는 중국의 비경을 그림을 통해 감상했듯, 작가는 다시는 볼 수 없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운 마음도 작품에 담아냈다.

'고향 산수도'와 '가족산수도'에서는 창밖에서 방안으로 들어오던 고향의 풍경을 표현했다. 포스코와 협업을 통해 스테인리스에 다양한 기법으로 산수를 표현하는가 하면, 추사 김정희가 제주 유배시절 그렸던 세한도를 통해서는 고향과 멀어지는 쓸쓸함을 표현했다.

다음으로 어두운 복도를 지나면 그 끝에 암벽처럼 거대한 산수화가 서 있다. 웅장한 암벽 사이에는 가느다란 물줄기의 폭포수가 연약하나마 끊임없이 떨어지고 있으며, 폭포 끝자락에는 낡은 외투가 걸려있다.

'이이남의 산수극장'에 전시된 '아버지의 폭포'

'아버지의 폭포'는 작가가 가족을 위해 쉼없이 일하던 아버지를 그리며 만든 작품이다. 복도 끝에서 바라봤을 땐 한없이 멀어 보였던 아버지(폭포)였으나, 어두운 터널(인생)을 지나 작품에 다가갈수록 어느덧 작가 자신이 아버지와 같은 가장이 된 것을 표현했다.

'이이남의 산수극장'에 전시된 '산수극장'

'산수극장'은 넓은 공간 끝에 바위와 산 오브제를 설치하고 김하종의 '해산도첩'을 벽면에 비춘다. 이 전시 공간의 가장 큰 특징은 공간 가운데에 길게 늘여진 여러 겹의 천들이다. 천 사이를 헤집고 나가다 보면 마치 이른 아침 안개가 낀 대나무숲에 와있는 듯한 착각을 준다.

전시의 마지막 작품은 영산강의 밤과 노을을 표현한 '고향의 빛'이다. 호남 미술의 거장 소치 허련의 '미가 산수'에 영산강의 풍경을 배치했는데, 

'이이남의 산수극장'에 전시된 '산수극장' 수겹의 천에 비친 조명과 영상의 실루엣이 마치 대나무숲에 와있는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특히 바닥 면에 조명을 길게 늘여 강물이 일렁이는 노을을 표현했다.

전시를 기획한 배진선 학예연구사는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작품 속의 삶에 공감하듯, 이이남 작가가 표현한 고향의 풍경, 호남의 풍경을 통해, 관람객들이 서로를 공감해보자는 의미에서 '산수극장'이라는 이름을 붙였다"며 "산수화가 어려운 젊은 세대와 미디어아트가 어려운 어르신들 모두 다 공감하고 추억을 나눌수 있게 기획했으니 많은 관심 바란다"고 말했다.

3일 오전 ACC 문화창조원에서 이이남 작가가 '이이남의 산수극장' 전시에 대해 기자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이이남 작가는 "쉼 없이 혁신과 기술발전을 추구하며 달려가는 이 시대에 잠시 '멈춤'하고 산수 속에서 생각해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며 "담양 봉산면에서 나고 자란 유년시절이 현재의 전시까지 이어졌다. 관람객들이 잊혀져가는 고향을 떠올리고 가족과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글·사진=임창균기자 lcg0518@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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