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5·18기록관에서 열었던 전시에서 '백비(白碑)'라는 작품을 선보였어요. 망월동 국립묘지에 묻힌, 이름 없이 사라져간 사람들을 상징하는 작품예요. 보상 없는 명예, 불휘 없는 영광 그리고 광주에 빚진 마음을 생각하며 그렸죠. 이번 전시도 '백비' 그리는 심정으로 준비했습니다."
전남대에서 초대전 '검은 울음'을 갖고 있는 김호석 작가는 지난 17일 이번 전시에 임하는 마음을 이같이 밝혔다.
작가는 한국을 대표하는 수묵 작가 중 한 명으로 '수묵대가'로 통한다. 그의 작품 다수가 교과서에 실렸으며 정약용, 김구, 안창호, 황희 등 우리에게 친숙한 역사적 인물 초상을 그리기도 했다.
역사적 인물 뿐만 아니라 독특한 사유로 담아낸 우리 시대의 정신성 역시 그의 작품 세계를 대표한다. 작가는 지난해 광주시립미술관에서 '검은 먹, 한 점'과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서 '이강, 세상을 품다' 전시를 가진 바 있다. 80년 5월 광주에 빚진 마음을 자신만의 사유 끝에 맺어진 작품으로 담아내 눈길을 모은 바 있다.
이번 전시는 지난 시립미술관에서의 전시가 끝난 직후 요청됐다. 작가는 지난해 전시 이후 꼬박 1년 여를 매달려 이번 전시 준비에 매진했다. 전시에서 선보이는 29점의 작품 중 21점의 작품이 지난 1년 동안 그린 신작이다.
김호석 작가는 "절대 권력에 굴복하지 않고 자존감을 지켜낸 광주의 정신을 녹여내보자는 생각으로 지난 1년을 보냈다"며 "작품 한 점에 지난 시간을 압착한다는 것이 상당히 정신적으로 어려운 일이었다"고 돌아봤다.
그의 신작들은 80년 5월 광주를 증언하는 사진,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 뿐만 아니라 그가 81년 광주에서 군생활을 하며 접한 무등의 풍경, 유가족의 이야기 등에 깊게 파고 든다. '쥐꼬리'는 도청의 마지막날 밤, 총소리에 부산했을 도청 안 쥐들에 대한 상상으로, '검은 눈물'은 80년 그날의 결단을 우리는 현재 어떻게 지키고 있는지에 대해 성찰하며 나온 작품들이다.
김 작가는 "내 작품의 본질은 관람객을 사유의 공간으로 이끄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관람객이 작품을 보고 '이게 뭐지' 느끼는 순간이 의미가 크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18일에 열린 전시 연계 학술심포지엄이 이같은 맥락에서 열려 눈길을 모으기도 했다. 전문가 10인이 그의 작품을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이를 공유한 시간으로 정답을 두기 보다는 각자의 해석을 통해 광주정신을 다양한 시각으로 논하는데 의의가 있는 시간으로 평가된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김허경 전남대 호남학연구소 교수는 "심포지엄을 통해 광주정신을 다시 한 번 묻고 싶었다"며 "작품을 보고 다양한 시각으로 논하는 자리로 각자 목소리를 통해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봤다. 이것이 한데 모여 광주정신에 대해 깊게 고민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어 김 교수는 "이번 전시를 계기로 5·18민주화운동의 숭고한 정신이 세계 문명사에 자리매김되고 학제 간 교류 또한 활성화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번 전시에는 작가의 신작 뿐만 아니라 '황희' 등 그를 대표하는 수묵 인물화도 함께 전시 중이다.
전시는 전남대 용지관 컨벤션홀에서 24일까지.
김혜진기자 hj@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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