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계엄 통해 본 2030 여성 정치적 주체화

by 최소원 기자 입력 2025.06.02 16:33
계간 '문학들' 여름호 특집서
'계엄 이후의 문학' 주제 글 게재
2016년 탄핵 광장-2024년 연결
주제·장소성 등 중심 변화 분석
'응원봉' 공연용 아닌 저항 표식
대상 아닌 '주체'된 여성 조명
계간 '문학들' 여름호에서는 응원봉과 깃발을 들고 광장으로 나서며 '주체'가 된 여성들의 활동을 조명한다. 지난해 12월13일 국회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 소추안 표결을 하루 앞둔 13일 저녁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시민들이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국회 통과 촉구 집회를 하고 있다. 뉴시스

12·3 비상계엄을 계기로 지난 2016년 박근혜 탄핵광장과 2024년의 광장을 이어 보며, 그 변화의 중심에 선 102030 여성들의 움직임을 조명한 글이 게재돼 눈길을 끌고 있다.

여성학자 권김현영은 계간 '문학들'이 최근 발간한 여름호(통권 80호) 특집 '계엄 이후의 문학'에서 '촛불에서 응원봉으로서의 상징 전환: 사물, 장소, 주체의 변화'를 주제로 한 글을 실었다.

권김씨는 이 글에서 특히 2016년 탄핵광장과 2024년의 광장을 연결하며, 그 중심에 선 2030 여성들의 정치적 주체화를 짚어내고 있다.

대중 봉기의 역사에서 여성은 늘 함께해왔지만, 그 존재는 종종 축소되거나 상징적으로 소비돼왔다. 4·19혁명의 진영숙, 2008년 촛불 집회에 참여한 여성들처럼 수많은 여성이 광장에 나섰지만, 이들은 '촛불소녀', '배운여자', '유아차' 시위대, '하이힐 부대' 등으로 묘사됐다. 정치적 주체로 인정받기보다는 성적 대상이거나 기호화된 이미지로 소비된 셈이다.

그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2016년 박근혜 탄핵광장과 페미존', '2024년 응원봉과 깃발들'을 통해 광장에서의 여성들의 존재를 되짚는다.

2016년 탄핵광장에 처음 등장한 '페미존'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여성성을 근거로 한 여성 혐오적 비난에 맞서는 공간이었다. 동시에 광장에서의 성차별과 성희롱을 경험한 여성들이 문제를 신고하고, 연대하며 대응하는 '저항의 장소'로 기능했다. 페미존은 이후 광장에서 여성들이 대상화된 시선을 거부하고 저항할 수 있는 정치적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2024년의 광장은 보다 다층적인 변화를 보여준다. 그는 상징, 주제 위치, 구도, 장소성의 변화를 중심으로 광장의 변화를 분석한다. 특히 그는 아이돌 팬덤이 만들어낸 '응원봉'에 주목한다. 이제 응원봉은 단순한 공연용 물건이 아닌, 새로운 저항의 방법론을 만들어내는 '저항의 표식'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통해 여성들이 더 이상 보호받아야 할 존재가 아니라, 공동체를 지키는 주체로 변화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계간 '문학들' 여름호(통권 80호)

또한 2016년 광장에서 운동 단체의 깃발은 일반 시민을 소외시키는 사물로 여겨졌지만, 2024년의 광장에서는 기존 운동 단체의 깃발과 시민들이 직접 만든 깃발이 나란히 존재했다. 그는 이러한 변화가 운동권과 일반 시민 간의 대립 구도를 완화한 상징이라고 본다.

그는 끝으로 비상계엄 사태는 헌정 질서의 틈에서 발생한 결과라고 진단한다. 그는 "내란의 종식은 예외상태를 종결시키는 압도적 힘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비상사태라는 국면에서 우리가 어떻게 연대하고 상호의존하면서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갔는지를 시작점으로 다시 잡는 것에서 시작될 수 있다"고 역설한다.

이와 함께 서동진 계원예대 교수는 '정치와 반정치, 비정치: 내란 정국의 정치를 생각한다'에서 '비정치적 민주주의'라는 개념을 조명한다. 프랑스의 자유주의 정치철학자 피에르 로장발롱의 논의를 인용해 대의제 선거 민주주의를 대신하게 된 정치 형태를 설명한다. 혁명에 대한 믿음이 사라진 이후, 인민 주권의 직접적 천명과 세계를 새롭게 만들겠다는 정치의 전망이 무너진 뒤 등장한 것이 바로 비정치적 민주주의라는 것이다.

서 교수는 오늘날 한국 정치가 바로 이 지점에 도달해 있다고 진단한다.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가'라는 정치의 본질적 물음은 사라지고, 정치 지도자에 대한 청문, 감사, 보이콧, 시위 등으로 정당성은 흔들리고 오명만 쌓이는 정치의 파편적 모습만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한편 이번 호의 '장소들' 코너에서는 기역책방을 운영하는 송기역 작가가 '금남로, 소년이 오는 거리에서'를 통해 '소년이 온다'의 배경을 소환한다. '뉴 광주 리뷰'에서는 김주선 평론가가 문학들 20주년을 맞아 '문학들 20주년에 대한 작은 회고'를 실었다.

최소원기자 ssoni@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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