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대순 시인의 작품 이해 키워드는 '공백'"

by 최민석 기자 입력 2024.05.27 16:46
범대순 시인 10주기 추모식·심포지엄
김영삼 문학평론가 발제 주장
'백지시'는 자기부정의 예술 본질
원시의 광기로 격동의 역사 동참
화석화되어가는 제도적 언어 거부

범대순 시인의 '무등산'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그 무등산은 존재하지 않으며 그의 시에 나타난 서석대 등 시적 대상들을 추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가 오독의 함정을 피해 '공백'으로 남겨 놓은 무등산을 마주할 때 진정한 이해에 다가설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시집 '무등산'의 시인 범대순 10주기 추모식이 지난 24일 오후 광주 동구 미로센터 미로극장 1관에서 열린 가운데 행사 하나로 진행된 심포지엄에서 김영삼 문학평론가는 발제문 '시집 무등산의 작품 세계'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그는 "범대순 시인은 실재하는 무등산을 지우고 그 공백의 자리에 '환상'과 '추상'을 기입하고 '광기의 무등산'으로 이행한다"며 "이 광기를 '불이었던 산, 바람이었던 산, 짐승이었던 산'으로 설명하면서 '산의 원시성'에 대한 그리움으로 치환한다"고 주장했다.

또 "지난 73년 현대문학 10월 호에 발표한 시인의 작품 '백지시'는 비시나 반시의 방식으로 시를 지시하는 '미친' 작업이었다"며 "백지는 끊임 없는 자기파괴와 자기부정이라는 예술의 본질의 표현이자 부정성 자체"라고 평가했다.

이와함께 "'무등산'에서 보이는 부정의 방식은 다시 언어와 문자를 통해 시를 언어와 문자로부터 해방시키는 일에 다가서는 방식"이라며 "'무등산'에 무등산이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고 이는 자기부정을 통해 원시의 광기를 표현했던 과거 시론의 흔적이자 지속의지로 읽어야 한다는 제언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그는 "시인의 생애를 보건대 80년이 훌쩍 넘는 삶의 시간 동안 격동의 역사를 함께 했고 그의 '늘 지는 역사'였다는 고백은 물론 역사에 대한 무관심이나 도피를 의미하지 않는다"며 "이 패배감의 근원에는 정치, 경제. 사회의 영역에서 화석화되어가는 제도적 언어에 대한 거부감이 자리잡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날 추모식에는 시인의 유가족과 광주·전남작가회의, 원탁시회, 문학들출판사 등 생전 범대순이 활동한 단체 소속 문인들과 학계 인사들이 참석했다.

문길섭 드맹아트홀 관장 사회로 회고사와 김희수·김정희 시인 시낭송, 기념사업회 출범, 가족대표 인사말과 공연 등이 곁들여졌다.

범대순 시인은 생전 무등산 1천100차례, 서석대를 160차례 오르며 시집 '무등산'을 통해 문단에 큰 족적을 남겼다.

광주 북구 효령동에서 태어난 범대순(1930~2014) 시인은 1950년 광주 서중학교, 1957년 고려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했다. 교사를 거쳐 전남대 영문학과 교수로 수많은 후학들을 길러냈다.

1958년 시인 조지훈의 추천으로 문단에 나와 '범대순 전집' 6권, '흑인고수 루이의 북' 등 시집을 펴냈다. 국민훈장 동백장, 문예한국 대상을 수상했다.

최민석기자 cms20@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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