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희생으로 쑥쑥 크는 아이들

by 최민석 기자 입력 2024.05.21 15:31
이성자 동화집 '바보 왕 원숭이' 출간
보이지 않는 이들의 봉사와 존재감
삶 속 슬픔과 고통 이겨내는 가족
배려와 착한 마음으로 품은 나날들

사람의 올곧은 성장 뒤에는 보이지 않는 이들의 사랑과 희생이 있다.

우리는 크고 작은 희생 속에서 살아간다. 나의 삶에는 자식을 위한 부모님의 사랑과 대가를 바라지 않는 마음으로 봉사하는 분들의 희생이 고스란히 남겨져 있다. 그들은 모두 자기보다 다른 사람을 위하는 것을 기쁘게 여기며 행복해했다.

희생은 세상에서 그 어느 것과도 견줄 수 없는 고귀한 정신이다. 최근 나온 이성자 동화작가의 '바보 왕 원숭이'(어린이가문비干)에는 이 같은 아름다운 희생의 이야기가 가득 담겨 있다.

'바보 왕 원숭이'는 백성을 자신보다 사랑한 원숭이 왕의 이야기이다. 원숭이가 사는 마을에 비가 오지 않아 열매가 하나도 열리지 않았다. 원숭이 왕은 할 수 없이 원숭이들을 데리고 강 건너 임금님의 동산으로 바나나를 훔치러 갔다. 그러나 순찰병에게 들키는 바람에 모두 바비큐가 될 판이 되고 말았다. 군사들이 동산을 포위하자, 원숭이 왕은 칡넝쿨을 이어서 잡고 강 건너 나무까지 날아가서 다리를 만들려고 한다. 그러나 넝쿨이 짧아 양팔을 벌려서 다리를 이어야 했다. 칡넝쿨 다리를 타고 원숭이들이 도망쳤지만, 원숭이 왕은 양팔이 찢긴 채 땅으로 곤두박질쳤다. 동산으로 끌려간 원숭이 왕은 자기가 바보여서 무리가 죽게 되었다며 임금님에게 용서를 빌었다. 임금님은 원숭이 왕의 찢긴 겨드랑이를 보며 눈물을 흘렸다.

또 다른 수록작 '삼촌의 빨간색 수면양말'은 5·18 광주민주화 운동 당시 죽은 아들을 잊지 못해 괴로워하는 할머니를 보듬으며 함께 슬픔을 이겨내는 가족의 이야기이다.

5월이 되면 할머니는 광주 민주화 운동 때 죽은 삼촌이 생각나서 몹시 힘들어한다. 그날 삼촌은 전화를 받고 서둘러 나가느라 빨간색 수면양말을 갈아 신지 못했다. 사흘 후, 할머니는 시신을 확인하러 갔다가 삼촌의 빨간색 수면양말을 보았다. 살아 있을 거라는 희망이 사라지자. 할머니는 통곡하며 빨간색 수면양말을 벗기고 흰 양말로 갈아 신겼다. 그 후로 할머니는 삼촌의 빨간색 수면양말을 40년 이상 품고 살았다. 삼촌의 제삿날, '나'는 수면양말을 태운 재를 무덤 위에 놓아 주었다. 그러고는 너무 늦게 가져와서 미안하다면서 이제 푹 주무시라고 인사했다. 내가 할머니를 꼭 안아 드리자, 아빠와 엄마가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가족은 삼촌의 비극적인 죽음을 슬퍼하면서도 지혜롭게 잘 이겨내고 있다.

이와함께 ''보라할머니'는 홀로 남은 할머니에 대한 이웃 사람들의 사랑과 배려의 이야기이다. 가족이 모두 미국으로 떠났지만, 보라할머니는 한국을 떠나기 싫어 혼자 남았다. 그러고는 대문 앞에 앉아서 아이들에게 영월에 데려다 달라고 조른다. 예전에 손자와 영월에 놀러 간 것 때문이었다. 민규는 할머니 소원을 들어주려고 영월에 함께 갔다. 마침 영월에 할머니가 계셔서 그곳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어 '사과꽃 물병'은 왜 우리가 남을 배려하고 착한 마음을 품고 살아야 하는지 알려주는 이야기이다. 혜미는 새로 전학 온 수향이를 어디서 본 듯했다. 어느 날, 혜미는 수향이와 절 뒤뜰로 놀러 갔다가 돌탑 사이에 패어 있는 구덩이를 함께 메우는 것이 얼개다.

'때늦은 후회'는 친구의 충고를 무시하는 바람에 어려움을 겪게 된 소나무의 이야기이다. 심봉산 굴속에 사는 황금거위는 늪으로 벼를 먹으러 가고 올 때, 소나무 아래서 쉬었다. 그러다 보니, 소나무와 황금거위는 아주 친한 사이가 되었다. 황금거위는 어느 날, 다른 나무를 괴롭히는 스트레 나무의 열매를 따 먹던 새가 소나무에 앉아 똥을 싸자 몹시 걱정되었다. 봄날, 소나무 한쪽 가지에 스트레나무 싹이 돋자, 황금거위는 잘라 버리자고 충고했다. 하지만 소나무는 부모라도 되는 듯 싹을 키웠다.

'어등산 구부렁길'은 불만투성이 꼬리 때문에 목숨을 잃은 뱀의 이야기이다. 어등산에 붉은 반점이 있는 아름다운 뱀이 살았다. 뱀은 어느 날, 유치원 근처에 놀러 왔다. 그러나 꼬리가 싫다면서 자꾸 다른 곳으로 가자고 했다. 머리가 들은 척도 안 하자, 꼬리는 왜 자기는 따라다니기만 해야 하냐고 불만을 터뜨렸다.

이성자 작가는 영광에서 태어나 명지대 대학원 문예창작과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아동문학평론 신인상, 동아일보신춘문예와 어린이문화신인대상 문학부문에 당선됐다. 우리나라 좋은동시문학상, 한국아동문학상계몽아동문학상, 눈높이아동문학상, 한정동아동문학상, 방정환문학상 등을 수상했고 지은 책으로는 '너도 알 거야', '키다리가 되었다가 난쟁이가 되었다가' 등 다수가 있다.

최민석기자 cms20@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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